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헤이젤 참사 (문단 편집) == 사건 이후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Stade_Roi_Baudouin.jpg]] 그 후 사건이 일어났던 보두앵 경기장은 1985년 이후 10년 동안은 육상 경기장으로만 활용되었다. 그러다가 1995년 리모델링 후 재개장해서 다시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 및 벨기에 컵의 결승전을 치르는 경기장으로 쓰이고 있다. 2006년 5월부터 11월까지는 안전 문제로 잠시 사용이 중단된 적도 있었다. 2016-17 시즌은 벨기에 브뤼셀의 몰락한 명문 풋볼 클럽인 [[로얄 위니옹 생질루아즈]]가 사용하고 있다. 생질루아즈는 위성구단 시스템을 최초로 고안한 클럽으로 2차 대전 전까지 벨기에 최고의 축구 클럽이었다. 그러나 2차 대전 이후에 최초의 우승을 얻은 같은 브뤼셀 연고의 [[RSC 안데를레흐트]]가 그 위상을 추월한지 오래고, 지금은 그저 벨기에 2-3부 리그를 오가는 퇴락한 클럽이 되었다. 그러나 새 구단주의 부임과 함께 자금이 확보되며 20-21시즌에 다시 1부로 승격되고 심지어 현재 21-22시즌에는 부동의 1위를 유지하며 정말 보기 드문 승격팀의 리그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다. 경기장 바깥에는 당시 사망자들을 기리는 추모비와 사망자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사건 이후 잉글랜드 내에서 과격한 [[서포터즈]] 문화를 자성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힐스버러 참사]]와 함께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발족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뿐만 아니라 [[영국]]이 타 유럽 국가와 비교하면 경기장 주변에 엄청나게 [[CCTV]]를 깔고 경찰들이 훌리건을 엄격히 관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CCTV는 경기장 주변이고 자시고 어딜 가나 영국의 도시라면 안 깔린 데가 없을 정도다. 영국이 괜히 '1984의 나라'라고 불리며, [[대한민국]]과 함께 CCTV 대국으로 거론되는 게 아니다.] 리버풀과 [[머지사이드 더비|지역 라이벌]]이었던 [[에버턴 FC]]은 1984-85 시즌에 풋볼 리그 디비전1[* 당시 잉글랜드 최상위 리그였다.]에서 우승을 했으나, 국제적인 징계 때문에 유럽대항전 출전이 억울하게 막히자 리버풀에게 매우 악감정이 커졌다. 결국, 2008년 [[구디슨 파크]]로 원정을 나온 리버풀 팬들에게 에버튼 팬들이 [[https://www.theanfieldwrap.com/2013/05/what-about-justice-for-heysel|"살인자들에게 2-0(2-0 to the Murderers)"]]라고 조롱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도발하기도 했다. [[파일:알렉스퍼거슨 프리미어리그 캐리.jpg]] 이 때문에 정상을 향해 달려가던 잉글랜드 축구 리그는 추락했고, 1990년대 중반까지 은퇴할 때가 다 된 독일 선수나 이탈리아 선수가 관광하러 가는 곳이란 인식이 생기는 등 [[프리미어 리그]] 출범 전까지 암흑기를 겪게 된다. 한편 [[케니 달글리시]]는 아래와 같은 물타기성 발언을 해 욕을 먹었다. >I can't condone the action of some Liverpool fans but it is difficult not to react when the opposing supporters are throwing missiles at you. >(리버풀 팬들의 행동을 용납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상대편이 계속 자신들을 향해 돌을 던지고 있을때 이에 대해 반응하지 않고 참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 >If they had foreseen the dreadful consequences, or thought what terrible things might unfold, I'm sure the stones would never have been thrown by the Italians and that the English retaliation would never have occurred. Every single one of them, both Italian and English, must have regretted it. >(만약 그들이 어떤 끔찍한 결과가 일어날 지 알았다면, 이탈리아 사람들은 잉글랜드 사람들에게 돌을 던지지 않았을 것이고, 잉글랜드 사람들도 그런 식으로 보복하려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곳에 있었던 이탈리아 사람들과 잉글랜드 사람들 모두 반드시 후회해야 합니다.) >---- >[[http://www.contrast.org/hillsborough/history/dalglish-heysel.shtm|회고록 전문]] 한 마디로 자기들도 피해자란 소리. 말도 안되는 궤변이라 할 수 있겠다. 이외에도 뜬금없이 헤이젤 참사와 1년 전 [[AS 로마]]와의 유러피언컵 결승전을 연결지으며 이탈리아인들이 그때 먼저 리버풀 팬들을 폭행했었다고 하지를 않나 유벤투스 서포터들이 먼저 돌을 던지고 도발했다고 하지를 않나 경기장을 제공한 벨기에 측과 UEFA까지 걸고 넘어지는 등 이탈리아 축구팬(주로 유벤투스 팬)들에겐 적반하장으로 밖에 안 보일 내용으로 가득하다. ||[[파일:external/i1.liverpoolecho.co.uk/WA904018.jpg]]|| ||<:>1985년 헤이젤 참사 추모식에 참석한 리버풀 FC의 관계자들의 모습.|| 헤이젤 참사 이후 리버풀과 유벤투스는 2004-05 시즌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만나게 된다. 리버풀 팬들은 사과의 뜻을 전하고자 [[안필드]]에서 열린 첫 번째 경기 전에 "amicizia"(이탈리아어로 "우정")이라고 쓰인 현수막을 형성하기 위해 플래카드를 들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제스처는 리버풀 팬들에게는 사과의 의미였더라도 피해자인 유벤투스 팬들 입장에서 볼 때 20년간 진정성 있는 사과를 전하지도 않았으면서 갑자기 우정으로 덮으려는 뜬금없는 제스처는 그저 한 번 더 상처를 주는 것에 불과했고, 또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도 아닌 '''우정'''을 운운한다며 격분한 팬들이 대다수였다. 실제로 유벤투스 팬들은 이 플래카드에 [[뻐큐|가운뎃손가락]]으로 화답했다.[[https://media.gettyimages.com/photos/juventus-fans-gesture-at-liverpool-fans-picture-id829576994|#]] 그리고 2차전 때 유벤투스 팬들은 "알아듣기 쉽게 말하겠다. 우린 너희 살인자들을 용서하기 어렵다."라는 플래카드를 꺼내 들었다. 폭동 직전까지 갔었으나 [[토리노]] 시장의 부탁으로 경기 자체는 평화롭게 끝나게 되었다. 참고로 1차전 결과는 리버풀의 2-1 승리로 끝났고 2차전 유벤투스 홈에서는 0-0 무승부로 마무리되면서 리버풀이 4강에 진출했다. 2010년 벨기에 헤이젤 스타디움에서 참사 25주년 추모행사가 열렸을 때 당시 선수로 뛰었던 플라티니 UEFA 회장은 다음과 같은 추모사를 남겼다. >그 경기는 90분으로 끝난 게 아니다. 아직도 당시 경기는 계속되고 있다. 그날 밤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당시 사건은 우리 인생에 남아있으며, 지금도 또한 앞으로도 항상 우리 인생에 남아 있을 것이다. 당시 경기에 참가했던 선수들이든, 단순히 텔레비전으로 경기를 지켜봤던 사람들이든 그 참사를 목격한 사람들이라면 어느 누구도 기억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서 39명의 희생자들을 추모한다. 우리 머리와 가슴은 희생자들과 희생자 가족들과 함께할 것이다. 이 참사로부터 27년이 지난 [[2012년]] 2월 [[이집트]]에서도 비슷한 사건인 포트사이드 경기장 폭력 사태가 일어났다. [[http://www.youtube.com/watch?v=fVCiRy0IC_E|당시의 처참한 영상. 클릭 주의 요망.]] [[2022년]] [[10월 1일]] [[인도네시아]] 리가 1 아레마 FC 대 페르세바야 수라바야 경기서 [[칸주루한 스타디움 참사|이 참사를 뛰어넘는 사건이 발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